2015/04/20 23:39

말끔히 표백된 불행 뭔가 쓰는 밤(2018)

1. 불행의 폭로를 넘어서

"우리는 아침마다 눈을 뜨면 신문과 TV 그리고 인터넷에서 오늘의 불행을 탄식하는 서정시를 듣는다. '휴먼다큐'란 희한한 장르의 볼거리는 불행을 꾸며주는 따뜻하고 심지어는 서정적이기까지 한 잔재주를 부리며 불행이라는 것을 안온하고 나른한 감상의 대상으로 꾸며 놓는다. 이는 그로테스크하다 못해 역하다는 기분까지 들게 한다. 비참함은 쓰라린 것, 차마 듣고 보기 어려운 것, 만류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적절한 감정적 기대를 가지고 느긋이 감상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가장 불쾌한 것은, 불행한 이들이 자신의 불행을 바로잡고자 대들거나 싸우는 것은 불행의 축에 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수동적인 불행, 피해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불행,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고발-비난-규탄-호소-투쟁의 흔적은 말끔히 표백된 불행, 잠시의 감상적인 연민을 통해 쾌적하게 소비되고 곧 휘발되어 버려야 하는 불행을 매일 한 꾸러미씩 선물 받고 태연자약하게 즐긴다.
이러한 불행의 경연은 진보적 저널리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르포르타주와 같은 장르는 더 이상 위선적인 세계가 은폐하고 있던 거짓의 증거로서 불행을 폭로하지 않는다. 폭로는 한 번으로 족한 것이다. 그다음에 일어나야 할 것은 바로 그러한 폭로를 통해 깨닫게 된 세계를 향해 어떻게 대처하여야 할 것인지 토론하고 투쟁을 조직하는 일이다. 그러나 진보적인 체하는 언론 역시 불행을 폭로하는 일에 분주하다. 그리고 그를 듣고 읽는 독자로서의 우리는 천역덕스럽게 마치 다음 순서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는 불행을 기다리며 연민을 준비한다. 이는 피해자는 있었지만 투사는 없는 세계가 보여주는 도착적인 초상일 것이다. 어쩌면 이는 윤리적인 허무주의가 취할 수 있는 극단적인 모습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더불어 이는 정치적 노선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나타난다. 좌파나 우파나 모두 불행이라는 세상의 기후를 즐긴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긍정의 공리주의가 극성을 부린다"
 _서동진, <변증법의 낮잠>, 꾸리에, 2014, 217~218쪽

불황, 실업, 생활고, 가혹한 노동조건의 적나라한 전시 혹은 "불행의 경연". 사회비판의 제스처를 차용해 '공포감'을 조성하는 포털 뉴스가 불편한 이유, 아울러 진보의 최전선을 자처하는 르포르타주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던 이유가 설명이 된다. 그것은 공포라는 감각과 연민의 소비를 촉진하는 시뮬레이션 환경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위기, 파국, 종말, 종언 등의 말이 자아내는 공포에 휩싸여 능력을 마비시키지 말자.) <변증법의 낮잠> 어서 마저 읽어야지. 한국사회에서 유일하게 대중적인 생명력을 지닌 지식인 담론일 문학비평계의 윤리적 전략(느낌의 공동체, 애도의 공동체 운운하는 윤리의 강조)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지점이 특히 흥미롭게 읽힐 듯하다. cf. "말끔히 표백된 불행"과 "잘 표현된 불행"!


2. 아웃사이더와 정신적 과잉 활동인

정말 의외의 계기로 존재를 알게 된 책이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고 있는 소녀를 보았다. 표지에 그려진 귀여운 일러스트와 제목 서체 때문에 장 자크 상뻬 같은 동화일 줄 알았더니, 나 같은 인간을 축복해주는 책이었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이 책 정말 재미있다. 단숨에 읽었다. 콜린 윌슨 <아웃사이더>의 통속적이고 친절한 심리학 버전 같았다. 아웃사이더, 즉 세상(의 암묵적 규칙) 속에서 이물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특성을 정리해내고,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생존 전략"까지 제공해준다! 어떤 부분에서는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군" 하면서 빵 터지기도 했고, 내용의 80% 정도는 나의 사고 행동 패턴과 비슷해서 "맞아, 맞아" 고개를 끄덕이면서 봤지만, 생각이 너무 많은 "정신적 과잉 활동인"들에게 이런 식의 따뜻한 서술은 단순하다는 느낌을 줄 것이 분명하다. 우뇌형과 좌뇌형 인간을 나누는 부분에서 신뢰도가 팍 떨어지고, 70~85%를 차지한다는 비-정신적 과잉 활동인인 보통 사람들을 너무 미개하게 묘사하고, '정신적 과잉 활동'이라는 개념을 만능 깔대기처럼 사용한다는 것은 부분적인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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