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메마른 마음. 내 욕망은 바싹 말라붙어 버렸다. 슬프다. 아니 슬프지 않다.
2. 삼일 전부터 하타케야마 미유키의 <젊었을 적이나>를 반복해서 듣고 있다. 키린지의 커버 버전이랑 번갈아 들으면 위안이 된다. 애타는 미유키의 목소리에 이어 담담하게 읊조리는 호리고메의 목소리가 들린다. 미유키의 깨질 듯한 슬픔을 호리고메가 단단히 붙잡아준다.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씁쓸해하는 사람이 적어도 셋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안정을 되찾는다. 그 시절은 돌아올 수 없다. 받아들여야 한다. 그 시절의 모든 감정이 소통될 수는 없다. 어쩔 수 없다. 그러니까,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나는 '젊었을 적'을 생각하는 나이가 되었다. '세계'와 '나' 사이에 '대립'을 만들어놓고 불안해하는 청춘, 세계에 스며들고 싶지만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서성이는 청춘의 시간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여러 가능성을 꿈꾸는 것도 내 일이 아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남 부럽게 사는 삶, 그러니까 스탠다드한 삶을 살지 않겠다던 치기도 이제 부끄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허황된 꿈이건 스탠다드한 삶이건, 뭔가 꿈과 목표가 있는 삶이 부럽다. 나는 구심점이 없다.
3. 최근, 어떤 계기로 인해 학교 사람들, 한때 속할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못했던 동네 사람들의 근황을 듣게 되었다. 미국에 갔던 누구는 아랍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누구는 결혼해서 와이프와 함께 일본으로 박사 과정을 갔으며, 누구는 결혼은 했지만 남편과 떨어져 영국으로 갔다고 했다. 나도 그들처럼 살고 싶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나는 좀더 큰 세계에서 공부하고 싶다. 평생 이 좁은 곳에서 편협한 시야로 살게 될까 봐 두렵다. 7평 남짓한 이 방이 내 세계의 전부라는 건 끔찍하다. 하지만 나는 공부하고 싶은 것이 없다. 아니, 내가 하고 싶은 공부는 굳이 나가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공부가 아니다. 나는...
2. 삼일 전부터 하타케야마 미유키의 <젊었을 적이나>를 반복해서 듣고 있다. 키린지의 커버 버전이랑 번갈아 들으면 위안이 된다. 애타는 미유키의 목소리에 이어 담담하게 읊조리는 호리고메의 목소리가 들린다. 미유키의 깨질 듯한 슬픔을 호리고메가 단단히 붙잡아준다.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씁쓸해하는 사람이 적어도 셋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안정을 되찾는다. 그 시절은 돌아올 수 없다. 받아들여야 한다. 그 시절의 모든 감정이 소통될 수는 없다. 어쩔 수 없다. 그러니까,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나는 '젊었을 적'을 생각하는 나이가 되었다. '세계'와 '나' 사이에 '대립'을 만들어놓고 불안해하는 청춘, 세계에 스며들고 싶지만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서성이는 청춘의 시간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여러 가능성을 꿈꾸는 것도 내 일이 아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남 부럽게 사는 삶, 그러니까 스탠다드한 삶을 살지 않겠다던 치기도 이제 부끄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허황된 꿈이건 스탠다드한 삶이건, 뭔가 꿈과 목표가 있는 삶이 부럽다. 나는 구심점이 없다.
3. 최근, 어떤 계기로 인해 학교 사람들, 한때 속할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못했던 동네 사람들의 근황을 듣게 되었다. 미국에 갔던 누구는 아랍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누구는 결혼해서 와이프와 함께 일본으로 박사 과정을 갔으며, 누구는 결혼은 했지만 남편과 떨어져 영국으로 갔다고 했다. 나도 그들처럼 살고 싶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나는 좀더 큰 세계에서 공부하고 싶다. 평생 이 좁은 곳에서 편협한 시야로 살게 될까 봐 두렵다. 7평 남짓한 이 방이 내 세계의 전부라는 건 끔찍하다. 하지만 나는 공부하고 싶은 것이 없다. 아니, 내가 하고 싶은 공부는 굳이 나가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공부가 아니다. 나는...

